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문단 편집) ==== 동쪽 해안 성벽 ==== 동쪽의 [[하기아 소피아]] 방면 해안 성벽은 평범한 단일 구조로 달랑 성벽 한 겹만 있었다. 그러나 이 한 겹의 성벽도 다른 성의 일반적인 성벽보다 튼튼한 데다가, 이곳은 고대부터 동로마의 신전이 있었던 곳으로, 고도가 가장 높고 노출된 면이 적었다. 또 동쪽과 남쪽을 감싸는 마르마라 해는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밀려오는 강력한 해류의 영향으로 평시에도 항해술을 제대로 익힌 승조원이 있는 튼튼한 선박만 근접이 가능하였고, 항구시설 또한 충분하지 않아 배를 접안하기도 어려웠다. 따라서 성벽을 건설한 이래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될 때까지 여기서 적군이 성벽을 넘은 사례는 전혀 없었다. 다만, 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하던 시기에 바다쪽 성벽은 베네치아의 공세 앞에 약점을 드러내었다. 이에 [[미하일 8세]]는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탈환하자 이 성벽을 강화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당시 [[베네치아]]나 [[제노바]] 등이 재차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해군전력이 열세인 동로마 제국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바다쪽 방벽의 강화가 필수였으며 금각만 건너편의 갈라타에 제노바인의 방어시설이 있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다. 미하일 8세는 시간에 쫓겨 우선 성벽 위에 2m 높이로 목재 구조물을 쌓고 천으로 덮어두었고 10년 뒤에는 제2의 성벽을 안쪽에 건설했다. 이후로도 팔레이올로고스 황조는 해안쪽 방벽을 계속 보강하고 부분적으로 해자까지 추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